정의
고려 후기에, 승천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윤인과 박문의는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자 몰래 가족과 재산을 강화도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를 만나 강화도가 난을 피할 만한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했다. 최우는 이를 검토하기 위해 두 사람을 먼저 강화도로 보냈지만, 도중에 몽고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최우가 윤인의 주장을 수용하게 되어 이후 1232년 2월부터 강화천도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급기야 6월에는 화의론(和議論)과 개경고수론(開京固守論)을 억누르고 전격적인 강화천도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강재광, 경인문화사, 2011)
-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윤용혁, 혜안, 2011)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고려시대 강화도읍사 연구의 쟁점」(김기덕, 『사학연구』61, 2000)
- 「고려의 대몽항쟁과 강도: 강화천도(1232)와 강도 경영을 중심으로」(윤용혁, 『고려사의 제문제』, 삼영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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