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승천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강화천도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천부부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인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승천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윤인(尹繗)은 승천부 부사(昇天府副使)로서 1231년(고종 18) 12월에 녹사(錄事) 박문의(朴文檥)와 더불어 무신집권자 최우(崔瑀)에게 강화천도(江華遷都)를 맨처음 건의하였다. 윤인과 박문의가 강화천도를 건의한 배경은 1231년(고종 18) 11월 안북부전투(安北府戰鬪)에서 고려 삼군(三軍)이 패하고 그해 12월 초에 탕꾸[唐古]등이 지휘하는 몽고군 별동대가 개경을 포위하자 고려 조정이 몽고에 화의를 요청하여 몽고군을 철수시키고 재항전을 모색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윤인과 박문의는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자 몰래 가족과 재산을 강화도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를 만나 강화도가 난을 피할 만한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했다. 최우는 이를 검토하기 위해 두 사람을 먼저 강화도로 보냈지만, 도중에 몽고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최우가 윤인의 주장을 수용하게 되어 이후 1232년 2월부터 강화천도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급기야 6월에는 화의론(和議論)과 개경고수론(開京固守論)을 억누르고 전격적인 강화천도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강재광, 경인문화사, 2011)

  • -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윤용혁, 혜안, 2011)

  •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 「고려시대 강화도읍사 연구의 쟁점」(김기덕, 『사학연구』61, 2000)

  • - 「고려의 대몽항쟁과 강도: 강화천도(1232)와 강도 경영을 중심으로」(윤용혁, 『고려사의 제문제』, 삼영사, 198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