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어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인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오찬(吳贊)은 어사(御史)로서 행수(行首) 주영규(周永珪) 등과 함께 전라도·경상도에 파견되어, 그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저축하고 있던 최만종(崔萬宗)·최만전(崔萬全)의 전곡(錢穀)을 풀어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또한 고리대 문서를 불태우고, 최만종과 최만전의 문도 중에서 불법행위를 일삼던 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오찬이 남부지방에 급파된 이유는 1247년(고종 34) 6월 형부상서(刑部尙書) 박훤(朴暄)이 무신집권자 최우(崔瑀)에게 북쪽 국경지대의 민심 불안 원인이 최우의 얼자(孽子)로서 승려가 된 최만종(崔萬宗)·최만전(崔萬全)의 대민수탈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에 기인한다. 최우는 박훤의 건의에 따라 최만종·최만전을 소환하고, 순문사(巡問使)·안찰사(按察使)를 시켜 최만종 등의 아래에서 무뢰배(無賴輩)로 활동하던 승려들을 구속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만전은 이후 최항(崔沆)으로 이름을 고쳐 환속(還俗)하였고, 자신이 모은 재산을 최우에게 바침으로써 차기 무신집권자가 될 계기를 마련했다.

오찬의 감찰활동과 위민(爲民)시책은 최씨정권으로부터 이반하던 민심을 어느 정도 돌이킬 수 있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 무인정권기 문사 연구』(황병성, 경인문화사, 2008)

  •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 『고려무인정권연구』(홍승기 편,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5)

  • - 「고려무인정권기 문사의 정치활동」(김의규, 『한우근박사 정년기념 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