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종친이며 수춘후(水春侯)·계성후(桂城侯)로 불린다. 아버지 왕성(王珹)은 신안후(新安侯)이며, 강종의 왕비와 남매 관계이다. 아들로 왕종(王琮), 왕경(王璟), 왕춘(王瑃), 왕희(王禧), 왕기(王祺) 등이 있다.
수춘후 왕항은 자신의 딸을 무신집권자인 최우(崔瑀)의 동생 최향(崔珦)과 결혼시켰다. 1220년(고종 7) 최향이 최우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후에, 왕항은 최향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 사도(司徒) 왕종 등과 함께 먼 섬으로 유배되었다. 당시 최우의 권력 장악에 방해가 되었던 최충헌의 가신(家臣) 최사겸(崔思謙), 계집종 동화(桐花)·성춘(成春)·사자(獅子) 등도 각기 섬에 유배당했다.
왕항 등은 얼마 안 되어 개경으로 소환되었지만, 최향은 유배지가 홍주(洪州)로 옮겨졌다. 그 후 최향은 홍주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후 왕항은 최우정권 하에서 왕실종친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성후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