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자인 최우의 동생 최향의 장인으로, 최향이 최우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이후에 유배되었으나, 곧 복귀하여 계성후에 봉해진 종실.
개설
왕실종친이며 수춘후(水春侯)·계성후(桂城侯)로 불린다. 아버지 왕성(王珹)은 신안후(新安侯)이며, 강종의 왕비와 남매 관계이다. 아들로 왕종(王琮), 왕경(王璟), 왕춘(王瑃), 왕희(王禧), 왕기(王祺) 등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수춘후 왕항은 자신의 딸을 무신집권자인 최우(崔瑀)의 동생 최향(崔珦)과 결혼시켰다. 1220년(고종 7) 최향이 최우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후에, 왕항은 최향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 사도(司徒) 왕종 등과 함께 먼 섬으로 유배되었다. 당시 최우의 권력 장악에 방해가 되었던 최충헌의 가신(家臣) 최사겸(崔思謙), 계집종 동화(桐花)·성춘(成春)·사자(獅子) 등도 각기 섬에 유배당했다.
왕항 등은 얼마 안 되어 개경으로 소환되었지만, 최향은 유배지가 홍주(洪州)로 옮겨졌다. 그 후 최향은 홍주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후 왕항은 최우정권 하에서 왕실종친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성후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최씨집권기 정권의 기반과 정치운영」(오영선,『역사와 현실』17, 1995)
- 「최우 정권에 관한 소고」(박종익, 조선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88)
- 「고려조의 왕족 봉작제」(김기덕, 『한국사연구』52,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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