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민음사에서 간행한 작자의 첫 시집이다.
‘어둡고 아름다운 이 세상에 이 시집을 바친다’라는 시인의 헌사와 ‘세계 살해를 꿈꿀 권리’라는 이윤택의 해설과 더불어 총 4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크게 두 가지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언어에 대한 미학적 인식이며, 또 하나는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다.
언어의 미학적 인식에 기반하여 ‘말’을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는 「공중 정원·1」,「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불구의 집」,「머뭇거리다가 너는 그 구멍을」,「동물원 창살 너머 꽃 한 마리」,「말의 폐는 푸르다」,「말은 나무들을 꿈꾸게 한다」등이 있다. 언어에 대한 송찬호만의 집요한 탐구는 수사적 차원에서 새로운 언어미학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결과 언어는 관습적으로 노출된 의미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대상과 대상의 돌발적인 충돌이라는 새로운 언어질서를 획득하게 된다.
비극적 인식에 기반하여 죽음이나 감옥을 주로 다룬 작품으로는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술, 매혹될 수밖에 없는」,「공중 정원·2」,「어머니는 둥글다」등이 있다. 그에게 원초적 고통은 죽음이다. 죽음을 환기하는 이미지는 주로 사각형, 감옥, 물방울, 달 등 출구가 없는 닫힌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게 시쓰기는 이 고통스러운 세계를 가볍게 승화시키는 행위이며, 이것이 그의 독자적 양식이 된다.
요컨대, 이 시집은 죽음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고통을 언어로써 맞서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아나키스트적 거역 의식이자 세계 살해에 대한 꿈의 결과이다.
시인에게 언어는 단순히 유희나 전달의 양식이 아니라 미학적 구원의 상징적 지평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언어 의식이 독자적인 시적 세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