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15일에 삼애사(三愛社)에서 간행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이다.
이승훈을 시인으로 추천해 준 스승 박목월(朴木月)이 서문을 쓰고, 김영태(金榮泰)가 장족(裝幀)을 하였다. 시인의 등단 작품을 포함하여 문단 초기 10여 년에 걸쳐 창작된 총 33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현실적 성향을 다소 보이고 있는 시인의 등단 작품인 「낮」,「바다」,「눈보라」등을 제외하면,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시인의 주조적인 특질인 모더니즘적 성향을 보인다. 특히 이 시집의 제목이면서 그의 대표시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 「사물(事物) A」는 이후 그의 독자적인 시적 특질인 ‘비대상시’의 원형이 된다.
그의 비대상시는 연대기적으로 세 단계의 양상 즉, ‘‘나’의 세계’, ‘‘너’의 세계’, ‘‘그’의 세계’로 분류된다. 『사물(事物) A』는 『환상의 다리』(1976)나 『당신의 초상(肖像)』(1981)과 더불어 ‘‘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첫 번째 양상에 속한다.
「사물(事物) A」,「가담(加擔)」,「어휘(語彙)」,「위독(危篤)」등을 비롯하여 이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어떤 구체적인 사물을 형상화하기보다는 상상력 안에 존재하는 비대상들을 창조하고 있다. 이 시집의 제목 ‘사물(事物)’과 ‘A’가 상징하듯이 개인, 곧 주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상을 무화시키거나 종속시키고 있다. 즉 내면의식만을 집중 탐구하면서, 현실이나 실제적 세계를 거의 배제한 채 초현실적, 무의식적, 추상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대상은 없고 자아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비대상시’를 창안하게 된다. 이러한 면모가 그의 모더니즘을 1950년대 모더니즘 계열과 변별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 형상화된 ‘나’ 또는 ‘자아’는 불안정하고 황량하고 어두운 내면의 모습을 지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다, 갯벌, 헛간, 골짜기, 밤, 어둠 등의 시적 소재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는 그의 ‘비대상시’가 불안이나 강박관념이 지배하는 무의식적 내면을 집중 탐구한 결과이다.
시인이 1960년 이후 한국 시단을 주도하는 모더니스트로서 활동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의식과 연장선상에 있으며 김춘수(金春洙)의 무의미시에 영향을 받아 ‘비대상시’의 원형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