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20일에 청하에서 발행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이다.
시인의 자서(自序)와 ‘상처입은 넋들을 위한 추도사’라는 장석주의 해설과 더불어 총 60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부에서 4부까지 ‘그러나 동편에’, ‘커어브’, ‘금곡댁의 하늘’, ‘하류’라는 표제로 구성된 이 시집은 1980년대 삶의 상처를 비극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비약과 단절의 수사학이 두드러진다.
비약과 단절의 수사적 표현을 보이는 작품들로는「이름」,「커어브」,「이미 오고 끝났는지」,「쑥국새 할미」,「혹한」,「그 무렵」등이 있다. 당대의 불안한 상황과 닮은 통사 구조를 보이는 이런 표현 방식들은 황학주만의 시적 양식에 해당한다.
상처, 고통, 슬픔, 원죄의식에 기반을 둔 비극적 주제를 그린 작품들로「지장천을 보며」,「한 궤짝 연탄을 사고」,「다시 지산동에 머물면서」,「계화교에서」,「그러나 동편에」,「저녁, 부안 2월」등이 있다. 비극적 상처들이 찔리고, 밟히고, 벗겨지고, 째지고, 뜯기고, 패어지고, 다치고, 베인 육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한편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地名)에는 시인 자신이 지니고 있는 떠돌이로서 정체성이 내재되어 있다.「떠돌이여」라는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떠돌이로서의 삶은 시인의 비극적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 시집은 이렇듯 상처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절망보다는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더 많이 주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시적 태도에 기인한다. 첫째, 어둠과 절망을 극복하려는 시적 태도이다. 이는 시인이 현실에 대한 분노나 증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분출하기 이전에 진지하고 치열하게 삶을 성찰한 결과이다. 둘째, 현실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사랑과 관용을 담고 있는 시적 태도이다. 「섬진강 내일」,「정말 살려면」,「바람에 불려 차디, 차던」등이 그런 대표적 작품이다.
이 시집은 상처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사회라는 보편적 체험인 1980년대 5·18항쟁과 연관, 확장시키고자 하였으면서도, 그 시대 민중 시인들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서정시의 세계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