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삼애사(三愛社)에서 간행한 작자의 첫 시집이다.
서문과 해설 없이 1963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작품인 「편지(便紙)」와 「고별(告別)」을 포함하여 총 3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의 주요 주제는 사랑, 죽음, 자연, 어머니 등이다.
사랑을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는「우울한 샹송」,「사랑이 주고 간 대화(對話)」,「종소리」,「성냥개비」,「목소리 4」등이 있다. 죽음을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는「겨울 초상(肖像)」,「고별(告別)」,「벌」,「말(馬)」등이 있다. 자연을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는「새들의 비가(悲歌)」,「겨울나무」,「꽃」,「목소리 7」 등이 있는데, 이들은 다시 두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황폐화되어 가는 자연을 통해 죽음을 환기시키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런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어머니를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는「우울한 초상」,「가을에」,「저 슬픈 허밍은」 등이 있다.
이렇게 사랑, 죽음, 자연, 어머니라는 네 가지 주제는 독립된 주제가 아니라 상호 연대하여 문명 이전의 원초적인 세계에 대한 시인의 희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 원초적 세계는 근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정신의 산물이다.
또한 네 가지 주제들은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대상들로, 이수익 시의 보편적 정서인 ‘비애’의 토대가 된다. 이 시집에서는 ‘지성’은 물론 그와 전혀 다른 성격의 ‘비애’ 또한 근대적 특질로 표상되고 있다. ‘비애’는 근대의 불안과 공포를 환기하는 대표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수익만의 독특한 모더니즘이 탄생한다. 그는 감성과 지성의 적절한 균형을 지향함으로써 1960년대 모더니즘의 보편적 특성인 의미의 파괴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되는 방식인 의미의 생산이라는 자신만의 모더니즘을 창출하게 된다. 이미지즘의 특성을 보이는「거미」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1960년대 ‘의미의 파괴’를 통해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현대시 동인’이면서도 그들과 달리 근대의 불안과 모순을 ‘의미의 생산’을 통해 극복하려 하였으며, 정지용의 이미지즘으로 연결되는 시적 의장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