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읍성 남문 ( )

함경북도 경성 남문 중 문루 측면
함경북도 경성 남문 중 문루 측면
정치·법제
유적
북한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는 조선후기 경성읍성의 남쪽 문(門). 성문.
이칭
이칭
경성남문, 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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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는 조선후기 경성읍성의 남쪽 문(門). 성문.
개설

경성읍성남문은 조선시대 중반기에 축조된 경성읍성의 남문으로 경성남문 또는 수성문(守城門)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급 제119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역사적 변천

경성읍성은 고려시대인 1107년에 토성으로 처음 축조되었으며 1437년에는 일부 구간이 석성벽으로 고쳐졌다. 그러나 현재의 경성읍성은 1616년부터 6년 6개월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유성 혹은 치성이라고도 부르며 성문, 성가퀴, 해자, 못, 우물 등을 갖추었다. 성의 사방에 각각 하나씩의 성문을 내고 정문인 남문을 수성문, 동문을 용성문, 서문을 호위문, 북문을 현무문이라 각각 불렀다. 현재는 남문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다. 경성읍성남문은 1756년홍예문으로 개축되었고 1838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그 후 수성문(守城門)의 현판을 달았다.

내용

1756년 경성읍성남문은 성벽 사이에 홍예문(虹霓門: 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을 내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5칸(13.15m), 특면 4칸(8.05m)의 익공집이다. 두공은 1층에서 3익공, 2층에서 4익공으로 하고 겹치마 합각지붕을 올렸으며 모루단청을 입혔다.

양쪽의 성벽이 남문 쪽으로 근접하면서 점차 두터워져 축대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성벽과 축대 간의 계선이 확연하지 않다. 축대는 길이 16.5m, 너비 11m, 높이 7m로 축대의 벽을 중앙 부분에서 우므러들게 요고형으로 축조되었다. 홍예문길 정면과 후면의 양쪽 벽을 2.7m 더 내 쌓아 옹성을 대신하고 있다. 홍예문길에는 이중으로 널문이 달려 있고, 네 모서리의 흘림기둥은 조금 높고 안쪽으로 경사지게 세웠으며 건물 안에 4개의 통기둥을 세워 2층 지붕을 직접 떠받들게 했다.

의의와 평가

경성읍성에서 창안된 요고형성벽과 요고형축대는 성문 건축의 다양성과 선조들의 오랜 축성 경험, 훌륭한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된다.

참고 문헌

『조선향토대백과』14(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6)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Ⅰ(조선유물유적도감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북한문화재 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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