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루

  • 예술·체육
  • 유적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조선시대 정방산성 남문의 누정.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진유정
  • 최종수정 2024년 12월 13일
사리원 정방루 전경 미디어 정보

사리원 정방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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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조선시대 정방산성 남문의 누정.

개설

정방산성은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정방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축성한 고려 시대의 석성이다. 북한 서해안 일대에서 남북으로 통하는 기본 통로를 막아선 황해도 지방의 으뜸가는 요새로 고려시대에 처음 축성한 뒤, 1632∼1635년에 크게 보수했으며 둘레는 12㎞이다. 정방루는 정방산성의 네 대문 중 가장 큰 문으로 정문에 해당된다. 북한에서는 정방루를 국가지정문화재국보급 제89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내용

정방산성은 동, 서, 남, 북 사방에 성문을 냈는데 옛날에는 이 네 성문들 모두에 웅장하고 화려한 문루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남문루(정방루)는 6·25 전쟁 때 폭격에 의하여 불타 버린 것을 원상 복구한 것이다. 성문의 축대는 따로 쌓지 않고 성벽을 좀 두껍게 하고 그 복판에 홍예문길을 뚫어 만들었다. 홍예문의 외벽은 다듬은 돌을 사용하고 통로 내부의 천장은 벽돌로 볼트천장을 형성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13.85m), 측면 3칸(7.2m)의 홑처마 합각집이다. 문루에는 흘림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단익공식 두공을 얹었다. 중앙 칸에만 마루를 설치했으며 천정을 가설하지 않아 상부 구조가 그대로 노출된다. 다만 중앙 칸을 제외한 일부에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부재에는 모루단청을 입혀 치장하였다. 이 남문루, 즉 정방루의 구조상의 특징은 측면까지 3칸으로 하면서 규모를 크게 잡은 것이며 정면의 가운데 칸을 특별히 넓힌 것이다. 남문의 평면상 규모는 우리나라 단층문루 중 제일 큰 것들 중에 속하며 개성 남대문과 거의 비슷한 규모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에 처음 축성된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는 가정과 함께 중층 문루 건축에 익숙한 장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참고 문헌

『조선향토대백과』10(한국 평화문제연구소 · 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6)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Ⅰ(조선유물유적도감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북한문화재 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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