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렬사터

  • 역사
  • 유적
  • 삼국
북한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당터.
이칭
  • 이칭칠렬사지(七烈士址), 칠불사터, 칠열사터(七烈士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인호
  • 최종수정 2024년 12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당터.

역사적 변천

612년(영양왕 23) 수(隋)양제(煬帝)의 고구려 침입 때 살수에서 7명의 승려가 세운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안주성(安州城) 밖에 사당을 짓고 비를 세웠다. 처음에 사당은 칠불사(七佛寺)로 불렀는데, 후에 칠렬사로 개칭되었다.

내용

칠렬사는 평안남도 안주시의 서북쪽 강변에 있는 옛 사당이었다.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면, 수군(隋軍)이 퇴각하면서 살수에 이르렀을 때 물이 깊어서 배 한 척 없이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 강변에 승려 7명이 홀연히 나타나더니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본 수군은 물이 얕은 줄 생각하고 다투어 건너다가 깊은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군이 강을 건너가다 죽은 곳을 오도탄(誤渡灘:잘못 건너간 여울)이라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칠불사(칠렬사)를 세우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칠렬사터는 고구려가 요동반도까지 진출했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 주는 문화유산으로서 북한의 국보급 제146호로 보존 · 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 『조선향토대백과』3·4(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5)

  • - 북한문화재자료관(north.nricp.go.kr)

  • -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