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훈사 중창비

  • 종교·철학
  • 유적
  • 조선 후기
북한 강원도 금강군에 있는 조선후기 표훈사 관련 중창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인호
  • 최종수정 2024년 12월 13일
금강 표훈사 중창비 정면 미디어 정보

금강 표훈사 중창비 정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 강원도 금강군에 있는 조선후기 표훈사 관련 중창비.

역사적 변천

표훈사(表訓寺)는 장안사, 신계사, 유점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로 일컫는다. 원래 극락전을 중심으로 20여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반야보전, 영산전, 명부전, 능파루(凌波樓), 어실각(御室閣), 칠성각, 칠층석탑 등이 남아있다. 『강원도지(江原道誌)』에 따르면, 670년(문무왕 10)에 신림사(神琳寺)로 창건되었다가, 673년에 표훈사로 개칭하였다. 표훈사는 1459년(세조 5)에 보수, 1682년(숙종 8) 복원, 1778년(정조 1) 복원, 1864년(고종 1) 중창기록을 통하여 여러 차례 보수, 중건된 절임을 알 수 있다. 표훈사중창비는 1864년의 중창공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파손되어 몇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내용

표훈사중창비는 1864년에 강원도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중창(重創) 사실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이다. 중창비는 비대석(碑臺石), 비신(碑身), 갓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대석의 높이는 아래 비대석이 12㎝, 위 비대석이 25㎝이며, 비신은 높이 1.58m, 너비 56㎝, 두께 22㎝이다. 갓돌의 높이는 30㎝이며, 비의 총 높이는 2.25m이다.

의의와 평가

표훈사중창비는 조선 말기 비석의 건립형식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유적으로서 북한의 보존급 제1237호로 보존 · 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조선향토대백과』11(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5)

  • -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