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는 백마산성을 거점으로 외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공을 세운 고려시대의 강감찬(姜邯贊), 조선시대의 임경업(林慶業)을 비롯하여 15명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백마산성 내성 안에 지은 사당이다. 임경업은 백마산성을 비롯한 서북지방의 여러 성들을 수축하였고,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백마산성을 굳게 지키며 청나라군의 행군을 둔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사당을 처음 세우고 ‘성우사’로 부르다가, 1789년(정조 13)에 현충사로 개칭하였다. 처음 세웠던 사당이 협소하여 서쪽에 건물을 지어 본전(현충사)으로 삼았으며, 본래 사당은 영당이라 칭하고 임경업 장군의 제사를 지냈다.
현재 현충사에는 본전과 영당, 임경업비각, 22인 비각을 비롯하여 7채의 건물들이 남향의 비탈진 곳에 여러 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본전은 정면 5칸(11.85m), 측면 3칸(7.55m)이며, 건물 정면만 겹처마로 된 박공집이다. 영당은 정면 3칸(7.55m), 측면 2칸(4.5m)의 겹처마박공집이다. 본전과 영당은 모두 흘림기둥에 2익공식 두공을 사용하였다. 임경업비각에는 1636년에 세운 비가 있고, 22인 비각에는 1816년(순조16년)에 세운 비가 들어 있다. 백마산성 내성 밖의 현충사 서당에는 임경업 장군이 쓰던 갑옷과 투구, 창 등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약탈당하였다고 한다.
현충사는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과 건축술을 연구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북한의 보존급 제103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