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의 문인서화가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1646년에 대중소의 초서로 당송시를 쓴 서책.
내용
조속은 인조~현종 때의 문신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했으나 훈명(勳名)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관직은 주로 지방관을 지냈는데, 1627년 덕산현감, 1642년 서산군수, 1645년 김제군수, 1650년 대구부사, 1652년 천안군수에 임명되었고, 그 사이에 공조정랑, 장령, 진선 등을 지냈다. 풍채가 맑고 깨끗했을 뿐 아니라 지조가 높고 청빈했으며, 고금의 서화와 금석탑본을 수집 완상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서화에 두루 뛰어났다. 글씨는 간정(簡淨)한 필획의 행초를 즐겨 구사했으며, 서풍은 원나라 선우추(鮮于樞, 1235?~1307 이전)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선우추는 조맹부와 함께 원대 서예의 중심인물로 특히 초서를 잘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그의 필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수집품에도 초서 6점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조선 전반기 내내 선우추의 서풍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는 드물며, 그런 점에서 조속의 글씨는 17세기 서예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참고문헌
- 『우리나라의 옛글씨』조선후기 명필(문화재청,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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