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은 해방 이후 『열린사회와 그 적들』, 『자전거 도둑』, 『양파』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쥐잡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 미아리 산동네의 민중들의 이야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다룬 이야기 등 세 개의 계열로 분류된다. 그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하던 민중이 실제로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또한 계층에 맞는 언어와 생생한 생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 1996년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강원도 철원 출신. 아버지 김응수, 어머니 김영혜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미아리 산동네로 이사와 1993년 결혼할 때까지 26년을 살았다. 1982년 서울대학교 인문대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학생운동과 야학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사회변혁운동의 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학회지에 글을 발표하는 등 습작을 하였다. 한겨레 기자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는 1993년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을 하였다.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1995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1996년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계간 『한국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중경공업전문대학 문창과에 출강을 하기도 한다. 1997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한 달 남짓 투병하다가 4월 22일 작고하였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쥐잡기」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였다. 6년 남짓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1993), 『장석조네 사람들』(1995), 『고아떤 뺑덕어멈』(1995), 『자전거 도둑』(1996), 『양파』(1996) 등 소설집과 콩트집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1996), 창작동화집 『열한 살의 푸른 바다』(1996)를 잇따라 내놓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98년 지인과 부인 함정임은 유고작을 모아 『아버지의 미소』를, 짧은 소설을 모아 『달팽이 사랑』을 펴냈다.
김소진의 작품세계는 흔히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 미아리 산동네의 민중들의 이야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다룬 이야기 등 세 개의 계열로 분류된다. 사회변혁운동이 실패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족사에 대한 기억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주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쥐잡기」, 「춘하 돌아오다」, 「사랑이 앓기」, 「고아떤 뺑덕어멈」, 「개흘레꾼」, 「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 「자전거 도둑」, 「원생학습생활도감」, 「목마른 뿌리」). 자신을 탄생시킨 아버지와의 화해는 결국 아버지로 대표되는 산동네 민중들의 이해로 확대된다(『장석조네 사람들』, 「비운의 육손이형」, 「수습일기」, 「그리운 동방」).
그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아버지와 엄마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성해내었다. 90년 신세대 작가들이 사회나 역사 대신 개인과 욕망을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그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하던 민중이 실제로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우리말 공부와 어머니의 입심의 영향으로 그는 계층에 맞는 언어와 생생한 생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김소진은 또한 변혁운동의 실패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다룬 소설을 썼다. 「처용단장」, 「임존성 가는 실」, 「혁명기념일」, 「경복여관에서 꿈꾸기」, 「울프강의 세월」, 「신풍근배커리 약사」등에서 그는 자본제적 논리에 순응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6)을 수상했다.
김소진을 기억하는 카페(cafe.daum.net/sojin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