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이화가 남자를 만나며 육체적 ·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소설이다. 이화는 자신의 처녀성을 지키려다 민요섭이 죽자 자신의 육체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이화는 우석기와의 만남과 죽음을 통해 사회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요섭과 석기를 통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이화는 여러 남자를 만나 그들의 상처와 슬픔을 육체로 치유해주는 ‘성처녀’가 되고 더 나아가 빈민촌에서 빈민층을 위해 일을 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 이화가 치유해주는 남성의 상처는 주로 아버지에 의한 상처이다. 민요섭은 공정하지 않은 정치가인 아버지 때문에 받은 상처를, 우석기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아버지 때문에 받은 상처를, 김광준은 자본가인 아버지 때문에 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의 상처를 통해 이 작품은 당대 사회의 폭력성을 잘 보여주고 더 나아가 사회의 폭력성의 원인이 가부장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화가 남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점에서 이화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이화가 이들을 치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순결 이데올로기와 결혼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화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화가 그들을 치유하는 방식이 육체이고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는 가부장제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자의 헌신만이 남성과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또한 이화의 깨달음이 모두 남성을 통해 이루진다는 점과 자신을 남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로 비유하는 부분은 이화가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1970년대 대표적인 대중소설의 하나인 이 작품은 197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1977년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당대 권위적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대안이 여성의 헌신과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는 이율배반적이다. 겉으로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가부장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통속적이다. 결국 이화의 성해방과 결혼 거부는 독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