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중편소설 「왕룽일가」,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서울 근교의 농촌 우묵배미라는 공간을 삶의 무대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이다.
연작의 첫 번째 소설인 「왕룽일가」는 평생을 흙 속에서 개미처럼 일하며 억척스레 살아가는 필용 씨 부부와 그 며느리인 불광동 새댁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세련되고 멋들어진 서울 여자인 며느리가 질컥거리는 검정고무신으로 상징되는 우묵배미에서 부딪히는 모습들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이질적인 문화의 풍속도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두 번째 소설인 「오란의 딸」에서는 필용 씨와 그의 딸 미애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도덕적 관념상의 변화를 주로 그리고 있다. 마을의 몇 여자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끔찍한 사고, 범죄 등으로 인해 흉흉하게 변해가는 마을의 분위기는 급변하는 세상의 풍속을 보여준다.
세 번째 연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는 순박하고 부지런한 인물 홍씨가 점차 술주정과 일탈 행위를 일삼는 문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우묵배미 마을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평화롭고 정겹던 주민들의 관계가 금전 문제 등으로 인해 반목과 갈등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점차 영악하고 추레해지는 모습들을 그림으로써 인간적 삶을 변질시키고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려 놓는 세상의 힘과 영향을 보여준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서울 근교의 우묵배미 마을은 반농반도시(半農半都市)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서민들의 순박하고 정직한 숨결이 배어 있는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변화하고 변질되어갈 수밖에 없는 공간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연작소설 『왕룽일가』는 이 공간을 무대로 소시민들의 질박한 삶의 모습과 변화하는 풍속의 묘사를 통해 1960년대 이후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의 세태 풍경을 여실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