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했으나 정학 처분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1년 일본 니혼(日本) 대학 문과를 수료했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월남해 『민주일보』 정치부장, 『민중일보』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1939년 『문장』에 단편소설 「바보 용칠이」와 「봄」, 1940년에는 「항구」가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산사람들」(1941)·「작가」(1942) 등을 발표하였다. 8·15 광복 후 월남한 뒤 『민주일보』 정치부장, 『민중일보』 편집부장, 『부인신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1951년부터 『평화신문』에 「전후파(戰後派)」를 연재하였고, 1950년대 초반 『매일신문』에 「낭만의 조각」을 연재하였다. 해방 이전의 초기작품들에서는 주로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많았으나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주로 다루었다.
1957년 창립된 경북문학가협회에서 창간한 『문학계』에 단편 「사랑의 힘」을 발표하였다. 1961년에는 『현대문학』에 「허기」를 발표하였다. 종군작가단으로 참전하던 시기에 발표한 「까치집 소동」(1951)과 「고지(高地)에서」(1951) 를 비롯해 「고향」(1948), 「슬픈 생존자」(1957), 「추억을 밟는 사람들」(1958), 「여로」(1959), 「역풍의 계절」(1964), 「서울은 하직이다」(1969), 「외롭지 않은 날들」(1978), 「샌프란시스코는 비」(1985), 「하나 남은 천사」(1988) 등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집으로는 『전후파』, 『슬픔과 고난은 가는 곳마다』, 『바보 용칠이』, 『만춘』이 있으며 1996년에는 『최태응 전집』이 발간되었다.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샌프란시스코는 비」, 「노마네」, 「하나 남은 천사」 등 세 편의 단편을 남겼는데, 이들 작품은 이주자들의 소외와 향수, 회한과 슬픔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