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최초로 ‘민중예술’을 표방한 미술가들의 모임.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28년 3월 18일 종로 태서관에서 제1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앞으로 진행할 방침을 “1. 연구소 설치의 건 1. 전람회 개최의 건(가을로 연기) 1. 지부설치의 건 1. 임원개선 간사 경성본부 김창섭, 김주경, 이승만, 유형목, 도쿄지부 김응진, 상하이지부 이창현, 연구소 박상진, 이제창”으로 결의하였다. 이때 연구소 설치건이 구체적인 안으로 결정되어 통과되었다. 이 연구소는 회원 뿐만 아니라 일반을 다수 수용하고 발전을 위하여 강사 이외에 상무위원을 두어 책임지게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활동을 확인할 수 없으며, 김복진이 공산당 활동으로 투옥되자, 1928년 8월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근대미술사』(홍선표, 시공아트, 2009)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 「미술가단체 창광회 제1회정기총회」(『동아일보』, 1928. 3. 22)
- 「창광회 창립회」(『동아일보』, 1927. 9. 2)
- 「미술가단체 창광회 발기」(『동아일보』, 192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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