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필구결(角筆口訣)은 고려시대 이전에 한문 원문을 당시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釋讀口訣)의 일종이다. 한자의 자형을 이용한 구결자 대신 각필이라는 필기도구를 이용하여 점이나 선 모양의 구결점(口訣點)으로 토를 달았으므로 점토석독구결(點吐釋讀口訣)이라고도 부른다.
각필구결은 크게『유가사지론』계통과 『화엄경』계통으로 나뉜다. 두 계통은 법상종과 화엄종의 소의경전이라는 문헌상의 차이 외에, 『유가사지론』이 『화엄경』에 비해 사용된 구결점의 형태가 단순하면서 위치 구분이 대단히 섬세하게 되어 있는 등 문자 체계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 계통은 현토된 언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가 어떤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호림박물관 소장 권3,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권5와 권8, 일본 남선사 소장 권8, 가천박물관 소장 권53 등 모두 5종이 알려져 있다. 모두 고려 초조대장경 판목으로 인출한 권자본(卷子本)이다. 특히 『유가사지론』 권8은 동일한 판본이 성암고서박물관과 일본 남선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현토자가 독자적으로 기입한 구결이 달려 있어 같은 계통 내에서 각필구결이 어떻게 변이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 밖에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합부금광명경』 권3과 연세대 소장 『법화경』 권1의 구결도 『유가사지론』과 같거나 비슷한 계통의 자료로 알려져 있다.
『유가사지론』각필구결의 구결점은 ‘형태’와 ‘위치’의 조합으로 일정한 언어 형식(음소, 음절 내지 어절)을 표현한다. 구결점의 형태는 단점(•)과 선(∕, ∖, —, |)을 기본으로 하고, 쌍점(, , , )과 눈썹형(, , ) 등이 일부 사용되었다. 이 자료에서 구결점의 위치가 구분되는 영역을 표시한 모형과, 각 위치에 단점(•)이 놓였을 때의 소릿값을 구결자로 표시한 점도(點圖)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구결점의 위치 분할 모형) (단점(•)의 점도)
구결점으로 구성된 점토(點吐) 이외에 다양한 부호가 사용되었다. 점토구결의 특성상 다른 문헌 자료에서 볼 수 없는 부호들이 많은데, 특히 점토를 달아야 할 한자에 달지 않았음을 표시하는 ‘지시선’이나 텍스트의 통사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역독선, 합부역독선’ 등은 『화엄경』계통의 각필구결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것들이다.
『유가사지론』각필구결은 고려 초조대장경 조성 시기인 11세기 무렵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어 표기자료이다. 아직 이 자료에 대한 정밀한 판독과 해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나, 앞으로 연구가 진척되면 고려 전기의 한국어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이 자료에 기입된 점토와 부호는 문자사와 표기법사의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본의 훈점(訓點)과도 많은 유사점이 있어 비교문화론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연구 과제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