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필구결(角筆口訣)은 고려시대 이전에 한문 원문을 당시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釋讀口訣)의 일종이다. 한자의 자형을 이용한 구결자 대신 각필이라는 필기도구를 이용하여 점이나 선 모양의 구결점(口訣點)으로 토를 달았으므로 점토석독구결(點吐釋讀口訣)이라고도 부른다.
각필구결은 크게『화엄경』계통과 『유가사지론』계통으로 나뉜다. 두 계통은 화엄종과 법상종의 소의경전이라는 문헌상의 차이 외에, 『화엄경』이 『유가사지론』에 비해 사용된 구결점의 형태가 훨씬 다양하지만, 위치 구분은 덜 섬세하게 되어 있는 등 문자 체계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 계통은 현토된 언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가 어떤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권5, 권22, 권36, 권57(이상 80권본), 권20(60권본)과 호림박물관 소장 권31, 권34(이상 80권본) 등 모두 7종이 알려져 있다. 대체로 11~12세기 무렵에 인출한 목판 권자본(卷子本)이며,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60권본(진본) 권20은 판각 시기가 좀 더 앞선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각필로 구결을 기입한 시기도 책을 만든 때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화엄경』각필구결의 구결점은 ‘형태’와 ‘위치’의 조합으로 일정한 언어 형식(음소, 음절 내지 어절)을 표현한다. 구결점의 형태는 단점(•)과 선(∕, ∖, —, |)을 기본으로 하고 쌍점(, , , )과 눈썹형(, , , , , , , , ), 느낌표형(, , , , , , , )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자료에서 구결점의 위치가 구분되는 영역을 표시한 모형과, 각 위치에 단점(•)이 놓였을 때의 소릿값을 구결자로 표시한 점도(點圖)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구결점의 위치 분할 모형) (단점(•)의 점도)
구결점으로 구성된 점토(點吐) 이외에 다양한 부호가 사용되었다. 특히 점토의 위치를 분명하게 표시하기 위한 ‘구분선’, 동일한 점토를 두 번 달았음을 료시하는 ‘중복선’, 점토를 달아야 할 한자에 달지 않았음을 표시하는 ‘연결선’, 텍스트의 통사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술목선’과 ‘보충선’ 등은『유가사지론』각필구결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것들이다.
현재 전하는『화엄경』각필구결 7종은 문자 체계나 부호의 사용에서 대체로 균일한 모습을 보이지만, 60권본(진본)과 권20은 나머지 6종과 비교적 큰 차이를 보여 앞으로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화엄경』 각필구결은 10~12세기 무렵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어 표기자료이다. 아직 이 자료에 대한 정밀한 판독과 해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나, 앞으로 연구가 진척되면 고려 전기의 한국어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이 자료에 기입된 점토와 부호는 문자사와 표기법사의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본의 훈점(訓點)과도 많은 유사점이 있어 비교문화론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연구 과제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