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경(金光明經)』은 『인왕경(仁王經)』·『법화경(法華經)』과 함께 이른바 ‘호국삼부경(護國三部經)’으로 불리며 고려시대에 널리 유통된 대승경전이다. 한문으로 번역된 금광명경 3종 가운데 597년 수(隋)의 보귀(寶貴)가 8권 24품으로 번역한 것을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이라 부른다.
석독구결이 달린 『합부금광명경』 권제3은 목판 권자본(卷子本)으로 전체 15장 가운데 제1장은 손실되었고, 제2장부터 제11장까지는 상단이 심하게 부식되어 본문과 구결의 일부분을 읽을 수 없다.
한 장의 폭은 33.2㎝이고, 광고(匡高)는 24.5㎝이며, 광폭(匡幅)은 57.6~58㎝이다.광곽(匡郭)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행관(行款)은 25행 17자에 소자쌍행(小字雙行)이다. 고려 시대의 두꺼운 닥종이를 사용하였다. 형태상의 특징으로 볼 때 13세기 초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거나 다라니로 되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문 전체에 걸쳐 두 가지의 석독구결이 기입되어 있다.
석독구결은 한문을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토를 단 것으로, 구결자(口訣字)로 토를 단 자토석독구결과 구결점(口訣點)으로 토를 단 점토석독구결의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는 표기 방식이 전혀 달라서 자토석독구결에서는 구결점을 사용하지 않고, 점토석독구결에서는 구결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특이하게 두 가지 석독구결이 모두 기입되어 있다. 아마도 점토석독구결을 먼저 기입한 다음,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나중에 자토석독구결을 다시 현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에 기입된 점토석독구결은 각필을 사용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먹물을 묻힌 모필로 매우 정교하게 기입하였다. 각필로 구결점을 기입한 다음, 그 위에 묵서로 덧씌운 흔적도 간혹 관찰된다. 점토의 체계나 부호의 사용은 대체로 『유가사지론』점토구결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토석독구결에는 모두 51가지의 구결자가 총 4,085번 쓰였다. ‘[여]’ 대신 ‘[여]’가 쓰이고, 사용 빈도가 매우 낮은 ‘一[일]’, ‘艮[ᄀᆞᆫ]’이 쓰이는 등 대체로 『유가사지론』과 비슷하지만, ‘[오]’가 쓰이지 않거나 ‘[뎌]가 쓰인 점 등은 『유가사지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책의 앞부분 제12장과 뒷부분 제1415장은 그 사이의 나머지 부분에 비해 구결자의 필체가 다르고, 언어적 측면에서도 좀 더 고형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기존에 ‘[려]’로 읽기도 했던 구결자는 구결점과의 대응 관계를 검토해 보면 ‘[고]’가 연속해서 쓰인 ‘[고고]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 책의 자토석독구결은 토의 위치가 잘못되거나 구결자를 제대로 적지 못해 다시 쓰거나 추가로 기입하는 등의 수정을 한 곳이 많고, ‘[ᄒᆡ]’와 ‘[리]’, ‘[ㄱ]’과 ‘[과]’를 구분하지 않고 혼동되게 적은 곳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은 자토석독구결과 점토석독구결이 모두 기입되어 있어 구결자를 사용한 자토와 구결점을 사용한 점토의 대응 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점토만 기입된 자료들로는 해독하기 어려운 점토를 해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한편 자토의 오류를 교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어 『유가사지론』 계통 석독구결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구결 기입 연대는 인출 추정 시기인 13세기 초 이후이지만, 여기에 반영된 어휘나 문법 형태의 표기 양상은 11세기 무렵의 『유가사지론』각필구결과 유사한 면이 많고, 14세기 이후의 구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한국어사의 시대 구분에서 고대 한국어 자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