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극동 지역의 고려인들이 당시 진행되었던 토착화 정책에 부응하여 고려인들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아 설립하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소련의 극동 지역에는 한인 마을이 많이 형성되면서 여러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러시아인이 러시아어로 운영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지만, 한인 마을에서는 한인 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특히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 소련 혁명정부는 지방 및 소수민족 정책을 펴나가면서 현지 토착 민족의 가치를 존중하는 토착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곧 토착 민족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행정기관에 임용하고, 언어 또한 토착어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인도 자연스럽게 교육 기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였다.
1927년에는 니콜스크(Никольск)-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에서 고려인사범학교가 설립되었고, 1930년에도 포시에트(Посьет)에 고려인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에 거주하였던 고려인들은 사범대학 건립 계획을 세우고서, 이전의 원동국제사범대학을 원동고려사범대학으로 재출범시켰다.
원동고려사범대학은 1935년에 첫 졸업생으로 17명을 배출한 뒤, 꾸준히 극동 지역 고려인들의 고등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937년 가을에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Кзыл-Орда)로 이동한 뒤,이전처럼 대학을 운영하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1938년에 소련 당국의 명령으로 원동고려사범대학은 크질오르다사범대학으로 바뀌었고, 고려인 민족대학에서 소련식 국가학교로 개편되었다. 1996년에 다시 크질오르다대학교로 바뀌었지만, 이미 고려인 민족학교의 성격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대학에서는 한국어로 강의를 하였고, 일상적인 행정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였다. 당시 고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대학은 민족 가치를 보존하였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