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소련 체제가 무너지고 우크라이나(Ukraina)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민족의 동질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려고 설립하였다.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결속을 통해서, 고려인의 지위 향상과 함께 민족문화의 유지와 부흥, 한국어 교육, 한국과의 교류 증대를 꾀하고자 하였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공화국 안에 고려인이 거주한 것은 1922년부터였다. 당시 소련 당국의 통제를 받아 키예프(Kiev), 하리코프(Kharˊkov), 도네츠크(Donetsk) 등지에서 고려인 연맹이 조직되었다. 1926년에는 소련 최초로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당시 103명의 고려인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공화국 안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뒤 이주하는 고려인들에 의해서 우크라이나일대 고려인의 수는 조금씩 증가하였다. 곧 1959년에는 1,341명이었는데, 1970년에는 4,480명, 1979년에는 6,061명, 1989년에는 8,669명 등이었다. 독립 이후인 2001년에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는 모두 1만2711명의 고려인이 우크라이나에 살았다.
1991년에 소련의 연방 체제는 급속히 무너져갔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한 뒤 소련 연방에서 분리되는 절차를 진행하였다. 동시에 고려인들도 민족의 동질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고려인협회를 설립하였으며, 각 지방에 지부를 갖추면서 조직을 정비하였다. 초기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였지만, 1995년부터 고려인 문화축제인 ‘ 까레야다(Koreyada)’를 개최하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두 나라 사이의 교류가 활기를 띠면서 점차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1999년부터 리 스베틀라나 덴하코브나가 회장을 맡아 10년 동안 협회를 이끌다가 2009년에 당시 부회장이던 강정식이 회장직을 이어받아 현재까지재임하고 있다.
협회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결속을 꾀하는 단체로, 민족문화의 보존과 부흥,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안의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출신 고려인들 가운데는 우크라이나의 국적을 획득하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나 국적박탈자로 사는 고려인이 제법 있었다. 2006년에 고려인의 국적 회복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협회가 이를 돕기도 하였다. 그밖에 한국과의 인적 · 문화 교류의 증진에도 노력하고 있다.
2012년 5월 25일에 키예프, 오데사(Odessa), 하리코프, 자포로제(Zaporozhe), 키로보그라드(Kirovograd), 니콜라예프(Nikolaev), 헤르손(Kherson), 크리보이 로그(Krivoy Rog), 드네프로페트롭스크(Dnepropetrovsk), 체르니우치(Chernivtsi), 체리카시, 잔코이(Dzhankoi), 심페로폴(Simferopol), 예프파토리야(Yevpatoriya) 등 14곳의 지역 대표가 모여 강정식을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아울러 최 블라디미르 발레리예비치 고려인문화센터 이사장은 제1부회장에 선임되었고, 김 류드밀라 안토노브나, 바리츠 나탈리야 나우모브나, 장 게르만 게르마노비치 등이 부회장을 맡았다. 특히 최 블라디미르 발레리예비치는 2007년 4월에 고려인문화센터를 설립한 뒤, 9월에 우크라이나 최초의 고려인 저널인 『무궁화』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협회는 우크라이나의 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일깨우면서 한국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이끌고 있다. 다만 2014년에 크림(Krym)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다시 편입되면서, 3천여 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국민이 된 것은 큰 변화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