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에서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당(友壋). 이수갑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3세에 귀국하여 경남 진양군 중촌리 575번지 동산부락에서 성장하였다.
10대 후반부터 대금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957∼1958년 당시 진주의 국악원 원장 김태문에게 〈잔풍류〉를 배웠다. 1959∼1964년 전주의 한 풍류방에서 추산(秋山)전용선(全用先: 1884∼1964)에게 대금 및 단소로 〈본풍류〉ㆍ〈잔풍류〉ㆍ〈뒷풍류〉를 배웠다. 1970∼1972년 석암(石菴)정경태(鄭坰兌: 1916∼2003)에게 거문고 풍류를 배웠다.
풍류 공부를 마친 후 전용선과 함께 구례ㆍ전주ㆍ이리 등의 경상도ㆍ충청도의 이름 있는 풍류방을 찾아 풍류를 즐겼다. 전용선은 단소ㆍ가야금ㆍ양금을 주로 연주하였고 이순조는 대금을 연주하였다.
자녀들과 동생들이 성장하자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풍류 생활을 접고 약 7년 정도 서울에서 행상을 하였다.
서울 생활을 정리한 후 진주 고향으로 내려와 전용선에게 가야금을 배운 호전(昊田)조계순(曺桂順: 1914∼1996)과 함께 풍류를 즐겼다.
전용선의 추모비와 공적비를 건립하였고, 진주시 주약동에 ‘진주풍류회’를 만들어 음악을 가르쳤다.
1997년 4월 17일 제28회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발표공연에 출연했다.
1998년 4월 21일 장혜숙의 가야금독주회에 출연했다.
1999년 9월 8일 진주시립국악단 제16회 정기연주회에 출연했다.
1999년 12월 8일 진주시립국악단 정기공연에 출연했다.
1990년 구례 향제줄풍류 전수조교로 지정되었다.
1996년 9월 1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 향제줄풍류(대금)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