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으로 본관은 진주(晋州), 본명은 정영옥, 호는 석암(石菴)이다. 정종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부터 15세까지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9세 때 주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3세 때 졸업을 두 달 남기고 그만두었다. 11세부터 2년간 나이봉 훈장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고, 13세부터 3년간 향리의 유학자 정도경에게 시문과 사서삼경을 배웠다.
1990년 미국 켄싱턴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 일본 동경신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6세 때 큰 동서인 김한술에게 처음 시조창을 배웠고, 동네 어른 오성현에게 며칠간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배웠다. 그리고 고창에 살던 김춘경에게 시조창을 배웠다.
17세 무렵 고창에 사는 이도삼에게 「사설시조」를 배웠고, 역시 고창에 살던 오윤명에게 「상사별곡」 · 「처사가」 등의 가사를 배웠다.
19세 때 장성 백양사 절에서 몇 달간 서울 사람 임재희에게 가곡과 가사를 배웠다. 22세 무렵 정읍에 살던 대금의 명인 죽민(竹民) 전계문(全桂文: 1872∼1940)에게 여창 가곡을 배웠다.
24세 때 서울에서 두봉(斗峯) 이병성(李炳星: 1909∼1960)에게 석 달 동안 정가(正歌)를 배웠다. 다시 3년 뒤 이병성에게 72일간 「언락」 · 「편락」 등 가곡과 가사 전 바탕을 배웠다.
30대 중반에 임석윤에게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김용근에게 거문고 가곡 반주를, 부안 사람 김학윤에게 가곡 가야금 반주를 배웠다.
정가 이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과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에게 필법과 사군자를 배웠다. 전북 지역 사람 김소란에게 남무를 배웠고, 대신 여창 가곡을 가르쳤다. 김소란에게 배운 춤은 무보로 정리하여 후에 책으로 출판하였다.
첫 제자는 동네 소년 송창섭이다. 21세에 송창섭에게 여창 가곡을 가르쳐 주었다. 30여 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자를 육성하였는데, 송창섭 · 김소란 · 박향란 · 김옥희 · 조계순에게 여창 가곡을, 유종구 · 고민순에게 남창 가곡을, 이리 향제줄풍류의 예능보유자 강낙승(姜洛昇: 1916∼2010)에게 12가사와 남창 가곡을, 김경애에게 거문고를 가르쳐 주었다.
해방 이후 그 동안 꾸준히 채보해 온 가락을 정리하여 『조선창악보』(1948)를 편찬하였다.
1952년 전주국악원 창립을 주도하였다. 단소 · 대금 · 북 가락과 범패 등의 채보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며 스스로 노래 · 거문고 · 단소 등도 계속 배웠다.
1953∼58년 전주고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특별 활동반으로 국악반을 만들어 교사와 학생들에게 시조창를 보급하였다.
1955년에는 10여 년 동안 채보하고 정리하여 온 『국악보』를 간행하였다. 이 악보에 이리 풍류가락이 남아 있다. 이 악보는 18종의 악기 연주법을 비롯하여 가사 · 가곡 · 시조는 물론 판소리 · 민요 · 단가 · 가야금병창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전주고등학교를 끝으로 교직생활을 마친 후 풍류객으로서 시조와 가사를 부르며 전국을 다녔다. 이때 지방에 따라 각기 다른 시조의 가락을 통일하였다. 즉 경제 · 내포제 · 완제 · 영제 · 반영제 · 원제 등의 각기 다른 가락을, 반영제를 바탕으로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였다. 현재 이를 석암제라 부른다.
1961년 대전에서 대한시우회를 결성하였고, 1963년 대한시우회를 창설하였다. 전국에 지부와 지회를 조직하고 전국에 시조 · 가사 · 가곡을 보급하여 국민개창운동을 벌이는 한편 매년 전국 시조 · 가사 · 가곡 경창대회를 열었다.
1967년에 삼화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취입하는 등 지금까지 여러 종의 정가 음반을 냈다.
1975년 7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가사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같은 해 11월에는 국립극장에서 가사 · 가곡발표회를 가졌다.
1979년에는 국악계 원로들로 대한정악회를 창설하며 회장직을 맡았다.
1980년 가을부터 1981년 봄까지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남녀창 가곡 전바탕을 녹음하였다.
정가뿐 아니라 국악 · 춤 · 서화 · 음양학 · 시문 · 장기 · 바둑에도 두루 능하여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악 공연, 시화 · 서예전을 열었다. 그리고 『악학궤범』 · 대금 · 북 · 단소 · 범패 연구와 악보 채보 등의 국악 관련 서적 발간 및 한시집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