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각은 조선후기 군영에서 신호·통신에 사용하던 동(銅)으로 만든 관악기로, 각(角)의 한 종류이다. 동대각의 형태와 재료 및 기능은 나발과 유사하다. 오늘날 동대각은 전승이 단절되었고, 나발을 통해 그 기능이 전승되고 있다.
각(角)은 삼국시대에는 북[鼓]과 함께 사용되었고, 고려시대 특수군인 별호제반(別號諸班)에 대각이 포함되었으며, 또 의위·노부에 각(角)을 연주하는 취각군(吹角軍)이 있었다. 조선전기부터 크기나 제작 재료에 따라 각(角)을 구분했는데, 크기에 따라 대각(大角)·중각(中角)·소각(小角)으로 구분하고, 뿔[角], 나무, 은(銀), 동(銅)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제작 재료에 따라 동대각(銅大角)과 목대각(木大角)으로 구분했다. 『세종실록』이나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 의하면 동(銅)으로 제작하는 각(角)은 중각(中角) 혹은 소각(小角)이지만, 조선후기에는 대각을 동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동대각의 형태는 1892년(고종 29) 『진연의궤(進饌儀軌)』에 보이는데, 이 악기의 형태는 중국 악기의 동대각과 같고, 나발과 유사하다. 동대각은 현재 전승이 단절되었는데, 그 형태와 기능이 유사한 나발로 흡수 전승된다고 하겠다.
대각은 중각 및 소각과 함께 조선전기 군영의 통신이나 신호 혹은 궁중의 제례 등에 사용되었다. 어두운 밤에 기(旗)의 빛깔을 분변하지 못하면 군의 각(角) 소리를 듣고 모이는데, 중군은 대각(大角)을 불고, 좌군은 중각(中角)을 불고, 우군(右軍)은 소각(小角)을 불고, 다 모이면 각(角) 부는 것을 그쳤다. 이와같이 각은 크기에 따라 용도가 정해져 있었지만, 그 재료도 각각 달랐다. 『세종실록』이나 『국조오례의서례』 에는 중각이나 소각을 동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중각이나 소각은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목대각과 동대각이 사용되었다.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에 각(角)은 북과 함께 야간에 순라군(巡邏軍)의 출동을 명령하는 신호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춘관통고(春官通考)』에는 대열의(大閱儀)에서 각영(營)의 대장을 불러 일어나 오고 물러나는 명령에 대각을 불어 신호한다고 하였다. 1892년(고종 29) 『진찬의궤(進饌儀軌)』에 보이는 동대각의 형태는 중국 악기의 동대각과 같고, 나발과 유사하다.
동대각은 동(銅)으로 제작하는 각(角)의 전통을 전승한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