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악수는 대년군(待年軍)의 예에 의하여 설치되어 장용영(壯勇營) 내영(內營)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세악수는 대년군의 예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대년군은 군역에 있는 사람이 죽거나 복무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그 뒤를 이어 16세가 되면 복무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자를 말하는데, 복무를 면하는 자의 아들 또는 아우가 되는 것이 보통이나, 없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있는 제도이다. 대년군은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급료병(직업군인)의 예비자원으로 등록·편성된 대기병으로, 훈련도감의 마군(馬軍)과 보군(步軍) 및 3군영의 표하군(標下軍)은 반드시 대년군에 등록된 자들에 한정되어 충원되었다. 표하군의 하나인 세악수도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아세악수에 관한 기록은 장용영(壯勇營) 내영(內營)에만 보인다. 아세악수는 본색원군(本色元軍)에 궐원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가 승부(陞付)하고, 또 원군의 유고(有故)시에도 그 역할을 대행하고 대가(代價)를 일급으로 지급받았다.
아세악수의 활동은 정조(1752∼1800)의 화성 능행시 행사를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와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에서 찾을 수 있다. 『낙하생집(洛下生集)』에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기름 바른 머리에 화장한 얼굴의 작은 아이를 아세악수라 한다고 했는데, 도상자료에 나타난 아세악수는 각각 홍색, 녹색, 황색의 옷에 각각 황색, 홍색, 녹색의 치마[裳]을 착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세악수는 세악수의 세습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조기 음악교육 혹은 조기 직업교육의 전통을 보여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