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진각대사증도가』는 금속활자 을해자(乙亥字)본으로 1책(71장)으로 간행되었다. 본문 중 원문은 을해자 중자를 사용했으며, 주석과 보주(補註)는 을해자 소자를 사용하여 주쌍항으로 인출하였다.
표지는 황지홍사(黃紙紅絲)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장정한 선장본(線裝本)으로 제작되었다. 책의 크기는 세로 33.2㎝, 가로 21.1㎝이며, 종이는 고정지(藁精紙)를 사용했다. 판식(版式)은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의 크기는 세로 24.3㎝, 가로 16.8㎝이다. 유계에 10항 19자, 주쌍항으로 되어 있다. 어미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판심제(版心題)는 ‘증도가(證道歌)’이다.
간기 등이 적혀 있지 않아 책을 인출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을해자가 1455년(세조 1)에 주조되어 임진왜란 이전까지 사용되었다는 점, 책의 인쇄 상태가 매우 깨끗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세조 연간(1455∼1468)에 책을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을해자로 인쇄한 『증도가』는 울산 양덕사 외에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증도가』는 일찍부터 선가의 수행 지침서로 여러 선사들의 법문이나 저술 등에서 자주 인용된 불서였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후대에 편찬된 주석서도 다양하게 수용되어 고려와 조선에서 수차례 간행되었다. 1209년(희종 5) 보제사(普濟寺)에서 간행된 정거주(淨居註)본 목판본은 고려 후기에 다시 간행되었다. 1239년(고종 26) 당시 최고 권력자이던 최이(崔怡)가 금속활자본을 번각(飜刻)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한 『남명송증도가(南明頌證道歌)』도 있다. 15세기의 목판본도 여러 본이 전한다. 1482년(성종 13) 학조(學祖)가 언해하여 금속활자로 인쇄한 언해본도 전해진다.
세조대에 간행한 을해자본 『영가진각대사증도가』에는 고려시대 간행본이나 여러 차례 간행된 『남명송증도가(南明頌證道歌)』와 달리 송대 언기(彦琪)의 주석과 원대 굉덕(宏德)의 주석 등 여러 주석이 수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에 『증도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증도가』는 당나라 선승 현각이 불도에 관한 깨달음의 경지를 시로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전체가 1,814자 267구로 구성되어 있는 칠언(七言)의 장편시이며, 전형적인 당나라 고시(古詩)이다.
『증도가』는 선에 입문하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문헌으로 선종에서 널리 읽혔던 책이다. 또한 후대 선서(禪書)에 많이 인용되어 이후 동아시아에서 선 사상이 전개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하다. 특히 송나라에서는 『증도가』에 주석이나 송(頌)을 붙인 책이 여러 편 찬술되었다. 송대 이전에 찬술된 정거(淨居)의 주석이 있고, 송에서는 1097년 범천 언기(梵天彦琪)의 『증도가기주(證道歌琪註)』, 1146년 묘공 지눌(妙空知訥)의 『증도가주(證道歌註)』가 편찬되었다. 원나라에서도 『증도가』 주석서가 간행되었다. 한편 1076년 송에서는 운문종(雲門宗) 승려인 남명 법천(南明法泉)이 증도가에 송을 붙인 『남명송증도가(南明頌證道歌)』를 간행하였다.
『증도가』는 선가의 대표적인 수행 지침서로 여러 선사들의 설법이나 저술에서 자주 인용된 책이다.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활자와 목판으로 지속적으로 간행되어 우리나라에서 선 사상이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중 『영가진각대사증도가』는 조선 전기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인쇄한 것으로 왕실의 불서 간행과 금속 인쇄의 면모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