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證道歌字)는 고려시대 13세기 초반에 주조되어 『남명청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라는 책을 찍었던 활자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현각(玄覺, 665~713)이 지은 『증도가(證道歌)』의 각 구절 끝에, 송나라의 남명산에 거주하여 명명된 남명선사(南明禪師) 법천(法泉)이 7자 3구씩 총 320편을 주석, 풀이하여 현각의 깨달은 깊은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현각은 육조 혜능(惠能)에게 인가를 받고 그 곳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설화에 의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 부르며 저술로는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증도가』 등이 전해지고 있다. 현각의 『증도가』를 주석한 법천의 호는 불혜(佛慧), 속성은 시 씨(時氏)로 용거산(龍居山)의 지문원(智門院) 신기선사(信玘禪師)에 출가하여 운거(雲居)의 효순선사(曉舜禪師)로 법사(法嗣)하고, 대명(大明), 천경(千境), 영암(靈巖), 남명(南明) 및 금릉(金陵)의 장산법천원(蔣山法泉院)으로 옮기며 수행하였고, 대상국(大相國)의 지해선사(知海禪寺)에서 종사(宗師)가 되었다. 이 책은 법천이 천경산에 있을 때 지은 것으로 권수에 1077년(문종 31)에 오용 천용(吳庸 天用)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1076년에 축황(祝況)이 책을 판각하였을 때 붙인 후서(後序)가 있다. 책의 권말에는 고려 금속활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책의 권말에 본문 다음에 고려 때 주자본(鑄字本)을 중조(重彫)한 기록이 붙어 있다. 이 기록에서 1239년 최이(崔怡, 초명 최우(崔瑀))가 『증도가』는 선문(禪門)에 있어서 매우 긴요한 책이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것에 의하여 깊은 이치를 깨닫고 있지만 책의 전래가 끊어져 유통되고 있지 않아 안타까우므로, 공인을 모집하여 이미 먼저 찍었던 주자본을 본으로 다시 목판에 새겨 내어 오래 전할 수 있게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이 고려 금속활자 중 증도가자와 관련하여 가장 빠른 기록으로, 당시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피신한 정부에서 시급한 수요에 부응하여 이미 앞서 개성에서 활자를 주조하여 찍었던 책을 다시 목판으로 찍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 저본이 되는 금속활자는 강화도 천도 이전에 개성에 있었던 금속활자이다. 이 금속활자는 천도할 때 강화도로 가져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도 찍었다.
이 금속활자는 현존하는 가장 빠른 시기에 주조된 활자로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 북한 평양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1점, 2015년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6점, 한국의 개인 소장자들에 흩어져있는 80여 점이 있고 이와 같이 알려진 활자명 미상의 미사용 고려 활자 1백여 점도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개성의 만월대 출토의 활자로 추정된다.
이 활자가 증도가자로 알려진 시기는 2010년경이다. 활자에 고려 13세기 당시 사용한 먹이 잔류하고 있는 30점 이상의 활자를 대상으로 4차례 방사성 탄소 연대 분석을 통하여 연대 추정을 한 결과 활자에 묻은 대부분의 먹이 1260~1270년 이전의 먹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개성 만월대에서 발견된 6점은 2015년 7차 남북공동발굴조사 중 1점, 2016년 북측에서 5점을 발굴된 것이다.
이 활자는 세계 문화사의 관점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금속활자이다. 이를 찍은 책은 비록 실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이 활자로 찍은 책의 번각본이 2종 남아 있으며, 특히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경우 현재 그 번각본은 4종이 알려져 있다. 증도가자는 이미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알려진 흥덕사자(興德寺字)로 찍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1책과 함께, 이보다 140년 빠른 시기에 중앙 정부에서 주조한 금속활자의 실물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금속활자 주조와 인쇄술의 우수성을 확인시켜주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