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경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씨족으로 초기에는 주로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했다가 점차 일본 각지로 세력을 확장해간 씨족이다. 하타씨는 주로 일본 각지의 토호세력으로 성장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일본서기』의 오진조(應神朝)에 따르면 하타씨(秦氏)의 조상인 유즈키노키미(弓月君)가 120현(縣)의 백성을 거느리고 일본열도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 중심 세력은 현재의 교토지역의 하타씨로서 점차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하타씨 일족을 통합하여 동족 집단을 형성해 갔다. 5세기 말의 유라쿠조(雄略朝)에는 전국의 하타씨를 모아 하타노 사케노키미(秦酒公)가 통솔하였다.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사케노키미가 하타씨의 백성 92부(部) 18,670명을 거느리고 조정에 비단을 바치려고 창고를 짓고 사카노키미를 장관으로 세웠다. 7세기에는 하타노 가와카츠(秦河勝)가 하타씨의 족장이 되었다. 그는 교토에 고류지(廣隆寺)를 세우고, 쇼토쿠태자(聖德太子)로부터 받은 불상을 안치했다. 645년의 다이카 가이신(大化改新) 이전에는 주로 조정의 재정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 큰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또한 784년부터 간무(桓武)천황이 나가오카쿄(長岡京),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하는데, 이 지역의 절대적 세력가였던 하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도 건설은 성공할 수 없었다.
하타씨의 어원에 대해서는 한국어의 ‘바다’(海)에서 왔다는 설, 일본어의 ‘하타오리’(機織)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하타씨의 출신지는 신라설이 유력하였으나, 최근 백제설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