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중 일본에 의한 조선인 강제동원(일본군위안부, 노무자, 군인, 군무원 등) 사실을 문헌·현지조사·증언수집 등에 의한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한국(남북한)과 일본간 우호와 화해를 목적으로 1972년 8월 오키나와에서 결성되어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 25개 지역에 지역조사단을 두고 활동하는 일본의 시민단체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사실을 객관적인 자료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한국(남북한)과 일본간의 우호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중국인 강제연행에 대한 조사 및 유골봉환이 진행되는데 비해 조선인 강제동원은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였다. 재일사학자 박경식(朴慶植: 1922~1998)이 『조선인강제연행의 기록』(1965)을 발간하여 조선인 강제동원의 사실을 밝힌 후, 일본 학계와 사회에 파장을 불러 일으켜 조선인강제동원 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다양한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다. 또한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화해와 중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오키나와 통치권의 반환 등과 같은 정치적 변화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같은 시민단체 발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 1972년에 조선인강제동원에 대한 시민단체가 오키나와에서 발족하였다.
오키나와에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을 결성할 당시에는 일본의 학자·문화인· 법률가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연대하는 형식이었으나, 현재 구성원들은 국적이나 정치적 지향성과 관계없이 참여하고 있다.
중앙조직이 구성되어 있으나 각지의 지방 조직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라는 명칭의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조직과 지방조직 모두 일본인측 조사단(일본인측 전국연락협의회)과 조선인측 조사단(조선인측 중앙본부)으로 구분하여 별도의 사무국을 설치하고 있다.
회원 규모는 일본인측 400여명, 조선인측 300여명 정도이며, 학자·문화인·법률가·교사·지역 시민활동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1992년 3월에 전국적인 강제연행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핫라인을 개설하고, 전국적으로 수집한 42만여 명의 명부를 2003년 2월 28일 한국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공개·제공하였으며, 그 해 9월에는 평양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92년 1월부터 자료집을 발간하기 시작하여 2006년 1월 현재 19호에 이르렀고, 증언집(『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증언』, 明石書房, 1990), 신문보도집(『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1970년대의 활동 - 신문보도 복각판』, 1992) 등을 발간하였다.
1975년 3월에 『조선인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기록-홋카이도·지시마·가라후토(北海道·千島·樺太)편』을 발간한 이후 해당 지역의 특성에 따른 조사를 진행한 결과물을 효고(兵庫), 시코쿠(四國), 간토(關東), 주부·도카이(中部·東海), 주코쿠(中國), 오사카(大阪) 등 지역별 시리즈(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의 기록)로 발간하였으며, 지역별로 가이드북이나 팸플릿도 발간하고 있다.
최근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지역조사단은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대표:니시자와 기요시(西澤 淸))이다. 2004년에 발족하였고, 도쿄대공습 조선인 피해관련 조사 및 국제 심포지엄 개최, 하치조지마(八丈島) 강제동원 피해 조사, 피해자 면담조사(한국), 교과서 분석, 학습회 운영, 매월 회보 발간,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연대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지조사와 학습회를 병행하면서 시민운동과 학술 활동의 균형점을 유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72년에 발족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그 후 일본 각지의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단체가 발족하여 활발히 활동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초에 일본의 조선인강제동원 관련 단체들은 전국교류집회를 개최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소송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전국적인 활동은 2004년에 전국교류집회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각종 포럼과 네트워크 형식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제동원 관련 단체의 활동은 단지 조선인 강제동원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피해 및 일본교과서 왜곡문제나 반전평화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시민평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