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9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민회(國民會)가 독립운동기지 개척사업을 위해서 설립한 주식회사.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태동실업주식회사는 1910년 5월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상설위원회를 설립해 임원을 선정하고 고본표(股本票)를 제조하여 각 주주에게 발급하는 등 활발한 모금활동을 전개해 1910년 5월까지 2,095달러를 모집해 투자하였다. 투자금으로 가옥 건설과 도로 설비와 농업경영에 필요한 농기구 등을 마련하였다. 1911년 7월경, 토지등기를 마치고 18칸의 사무실 건물과 35호의 민가가 들어서 만주,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을 이주시켰다. 이후 봉밀산 지역 3곳에서는 150여호, 100호, 50호의 한인촌이 형성되었고 이들 외에 약 200호 정도 한인들의 호수가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
태동실업주식회사의 토지개척사업은 현지 중국인으로부터 임대한 토지와 필요한 용구를 갖추고 농업경작에 착수했으나 마적의 행패가 심하여 안정을 얻을 수 없었다. 개인사유지가 아닌 국유지를 구매하였고 한편 귀화하지 않은 한인들은 토지 소유권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태동실업주식회사 주식」(독립기념관 소장, 1910)
- 「태동실업의 소식」(『新韓民報』, 1910.10.19)
- 「주금모집광고」(『新韓民報』, 1909.5.5)
- 「社名 개칭」(『新韓民報』, 1909.4.28)
- 「不外乎此」(『新韓民報』, 1909.9.1)
- 「아세아실업주식회사 취지서」(『共立新報』, 1908.10.21)
- 「일본외교사료자료」(일본외교사료관 소장)
- 『도산안창호의 독립운동과 통일노선』(이명화, 경인문화사, 2002)
- 『한국독립운동사료집-홍범도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 『李相卨傳』(尹炳奭, 일조각, 1984)
- 『在美韓人五十年史』(金元容, 캘리포니아,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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