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초의 민간군사조직으로 1959년 1월 14일 창설 당시 명칭은 ‘노농적위대’(勞農赤衛隊)였다. 노농적위대는 이전의 ‘인민자위대’를 확대 개편한 것이다. 북한에서 본격적인 민간부문의 군사조직이 건설된 것은 한국전쟁의 와중인 1951년 11월쯤이었다. 현역군인 이외의 17-30세의 남성을 대상으로 기존의 인민자위대가 개편, 강화되어 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공장, 기업소, 제조소, 농촌 등에 민간 군사훈련 조직이 편성되어 전 공업부문에 훈련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 훈련을 보장하기 위해 군총사령부 전투훈련국 내의 민간군사훈련부가 설치되었다. 인민자위대는 당시 남한의 ‘국민방위군’과 비슷한 예비부대이자 지방 치안 담당을 위한 민간인 부대였다.
이 조직이 1959년 1월 노농적위대로 확대 개편되고 지휘권이 당군사위원회로 인관되었다. 도·시(구역)·군·리 등의 행정단위 및 전체 직장 단위의 각급 노농적위대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조직되었다. 지방당군사위원회가 이를 관리하며, 노농적위대의 각급 부대장은 지방당 각급 위원장이 담당하도록 하였다.
현재 만 17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과 미혼여성 중 교도대 미편성자와 노동자, 농민, 사무원(남자 위주) 등을 대상으로 직장 및 행정단위별로 편성되어 규모면에서 가장 큰 군사조직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통제 하에 평상시에는 민방위 업무와 함께 직장 및 주요시설의 경계, 지역방어 및 대공방어를 기본임무로 하며, 전시에는 정규군 보충 및 군수품 수송을 담당한다.
노농적위대의 조직 형식과 지휘관은 민간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실제 이 조직의 기층 간부들은 대부분 제대군인으로 이루어졌다. 또 당군사위원회의 조직구성상 군대의 영향력이 노농적위대에 행사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고 실제 군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한편 노농적위대는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 이후 ‘노농적위군’으로 개칭함으로써 현역에 준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1년 뒤인 2011년 9월 9일 9·9절 기념 열병식 준비보고를 하는 과정에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열병부대는 열병식 준비검열을 받게 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노농적위대 사령관 상장 오일준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다시 노농적위대로 명칭을 환원시킨 것이다. 하지만 2018년 9월 9일 조선로동당은 정권수립 7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해 “당 중앙위원회는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주체조선의 존엄과 강대성을 만방에 떨친 조선인민군, 조선인민 내무군 장병과 노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 대원에게 감사를 보냈다.
개인화기는 100%, 공용화기는 일부 지급되어 있고 훈련시간은 연간 160시간이며 총대원은 약 570여만명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