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1998년 4월 18일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앞당기자”라는 제하의 서한을 보냈으며, 여기에서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위해서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내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연대 연합을 강화하여야 한다.’ 등이다.
이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은 김일성이 1993년 4월 6일 제시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의 내용을 기초로 이를 압축적으로 재정리한 것이다. 그 핵심이 되는 민족대단결론은 북한 정권이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고 통일의 중심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민족이라는 혈연적 동질성을 앞세워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탈냉전이라는 급격한 정세변화에 따라 북한 주민의 충격을 완화시키고 내부정비의 시간을 벌기 위한 책략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이 제시된 시기는 김정일이 유훈통치를 끝내고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를 여는 준비과정과 맞물려 있다. 김정일은 1997년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발표하여 대남·통일정책과 관련한 기본노선을 그대로 답습할 것임을 밝혔지만, 이를 김정일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통일지도자 상을 과시하려 한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대해 북한은 외세와의 공조와 국가보안법 철폐, 합동군사훈련 중단 등을 선행 실천사항이라며 줄곧 주장하면서도 1998년 4월 남북 당국대표회담에 응해왔는데, 상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인 시혜만을 고집함으로써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은 그 직후에 발표되었는데, 남북 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간 접촉·왕래·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북한은 남북 당국 간 대화를 계속 회피하는 태도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