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오개방침 ( )

목차
정치·법제
개념
1973년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발표된 북한의 통일강령. 조국통일오대강령.
이칭
이칭
조국통일오대강령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1973년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발표된 북한의 통일강령이다. 김일성이 1973년 6월 23일 체코공산당 제1서기 후사크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발표하였다. 한국 측에서 「6·23 선언」을 통해 대공산권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자는 제안을 하자 즉각적으로 이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내놓고 대응하였다. ‘고려연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 ‘단독 유엔가입 반대 및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가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목차
정의
1973년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발표된 북한의 통일강령. 조국통일오대강령.
내용

김일성은 남한에서 「6·23 선언」을 발표하자 당일인 1973년 6월 23일 체코공산당 제1서기 후사크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발표하였다.

당시 북한은 세계적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유엔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갔다. 북한이 그동안의 외교정책을 바꾸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5개국과 수교하였고 각종 유엔 산하기구와 WHO 등 전문기구에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베트남 전쟁이 종결단계로 접어들고 미국이 대아시아 개입정책으로부터 전환을 추진하는데 따라 한반도 문제를 민족내부 문제화하여 주한미군 철수를 얻어내고 남조선 혁명의 여건을 성숙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였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무력경쟁 중지와 군대 감축 등 평화공세를 펴면서 한미 이간과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하는 한편,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그 이전까지 통일방안으로 제시하였던 「과도적 연방제」를 수정하여 국호를 ‘고려연방공화국’ 하나로 하고 이 단일국호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새로운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한국 측에서 「6·23 선언」을 통해 대공산권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자는 제안을 하자 북한은 즉각적으로 이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내놓고 대응하면서 「6·23 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조국통일 5대 강령의 주요 내용은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 상태 완화’, ‘남북 간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정당 ·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고려연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 ‘단독 유엔가입 반대 및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가입’ 등이다.

특히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 상태 완화’와 관련하여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 조치로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의 중지,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군대와 군비의 축소, 외국으로부터의 무기 반입 중지, 서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하였다. 이 내용은 남북조절위원회에서 북한 측이 주장하던 내용과 동일하다.

여기에 주목되는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때까지도 북한은 평화협정을 남북 간에 체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추구하고 ‘평화문제는 북미 간에, 통일문제는 남북 간에’ 협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1974년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는 1960년대와 내용이 달라진 연방제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남북한 정부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회의라는 기구가 없어지고 그 대신 군중집회 형태의 대민족회의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국호만 제시되어 있지 연방정부와 지역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단일국호로 대외활동을 하자는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지역정부의 독자적 활동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70년대 내내 대민족회의 개최 등 이 조국통일 5대 강령에 입각한 조치들을 남북대화를 재개시키는 조건으로 내걸거나 대남 제의를 해오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70년대 중반 이후 8·15 경축식장 대통령 저격사건, 대남침투용 땅굴 굴착,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등 다시 대남 도발을 지속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긴장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통일문제이해』(통일부 통일교육원, 2013)
『남북관계 지식사전』(통일부 통일교육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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