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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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판소리 서편제 / 안채봉
남도판소리 서편제 / 안채봉
무용
인물
해방 이후 전라남도 무형유산 서편제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전통예인.
이칭
이칭
안성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20년
사망 연도
1999년
본관
순흥 안씨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 상곡리 아래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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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전라남도 무형유산 서편제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전통예인.
개설

일제강점기 후반에 광주권번에서 가무악을 익힌 후 판소리꾼으로 활동하였고, 1950년대부터 전라남도 광주를 중심으로 가무 활동을 한 전통예인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이고, 소고춤의 명인이다.

생애

1920년 10월 8일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 상곡리 아래울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안성자이다. 아버지 안영권은 풍류객으로 가야금, 대금, 장구, 피리에 능했고,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쥐춤으로 유명했다. 딸 하나를 예능으로 키우라는 큰아버지의 말에 그의 부모는 반대했으나, 큰아버지가 자기 딸로 입적시켜 광주로 데리고 갔으며, 그 곳에서 광주권번에 들어갔다. 14세부터 3년 동안 임옥돌, 조몽실,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박영구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 등을 배웠다. 따로 안기선을 독선생으로 모셔 백일 동안 춘향가, 단가, 토막소리도 익혔다. 17세에 청진권번에 잠깐 있을 때 오태석, 임옥돌, 박동실, 조몽실, 조상선 등과 단체를 꾸며 길림, 훈춘 등 만주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을 순회공연했다. 가을에 안기선과 함께 청진권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큰아버지에 의해 일본 도쿄로 보내져서 춘향집이라는 조선인 요리집에서 8년간 예기 노릇을 하다 귀국했다. 1948년에 오태석, 정남희, 임방울이 조직한 국극사가 흥행했는데, 일년 반 가량 함께 공연했다. 전쟁 후 안채봉은 선생을 찾아 기예를 익혔다. 37세 무렵 전라남도 보성의 정응민에게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를 배우고, 한진옥과 김종기에게 살풀이와 가야금도 전수받았다. 1980년부터 광주시립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쳤고, 광주예고에서 춤과 소리로 제자를 양성했다. 1982년 6월 10일 공간사랑에서 심청가를 발표했고, 1985년 ‘한국명무전’에 출연했다. 1988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판소리 서편제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5년 12월 28일 소리인생 70년 기념연주회를 열었다.

활동사항

안채봉이 광주권번에 들어갈 즈음에 기생들은 춤보다 소리 기예에 더 집중했었다. 그가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것도 젊은 시절 주로 판소리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춤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재주였으므로, 판이 벌어지면 그의 춤은 빠지지 않았다. 춤에 대해 “춤이야 장단만 알면 이녁 멋으로 우러나는 거지.”라고 했었고, 그의 소고춤이 유명했다. 그가 춘 소고춤은 수건춤과 소고춤을 합친 구성으로, 진양 장단으로 시작하여 수건춤을 추다가, 중중모리에서 그 수건으로 허리를 질끈 매고 소고를 들고 신명을 돋군다. 기생 소고춤으로 기예와 멋을 다하여 신명이 오르면 허리에 맺던 수건을 가슴 위로 올려 자라목을 만들어 병신춤을 춘다. 두 팔을 겨드랑이에 붙여 짤막하게 늘어뜨리고 뒤뚱거리면서 곱사춤을 추었다. 또 짧아진 팔로 소고를 치며 휘돌아 자신의 흥뿐만이 아니라 관객의 흥을 최고조로 만들었다. 이 춤에 언제나 김오채(金五彩)가 영무장가락으로 장구 반주를 해주었다.

참고문헌

『안채봉: 소고춤』(정범태·구희서, 열화당, 1992)
『한국의 명무』(정범태·구희서, 한국일보사, 1985)
「안채봉 소고춤 춤사위에 관한 연구」(김윤희,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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