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광무

  • 예술·체육
  • 작품
1910년대 경성의 극장에서 기생이 추었던 창작춤.
이칭
  • 이칭나비춤, 전기불춤, 전기춤, 전기호접무, 電氣蝴蝶舞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김영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0년대 경성의 극장에서 기생이 추었던 창작춤.

구성 및 형식

매우 크고 흰 소매의 의상을 입고, 나비가 날개를 활짝 피듯이 양 팔을 옆으로 크게 벌려 추는데, 이 넓은 소매에 여러 가지 색의 조명을 비추어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춤이다. 춤의 반주는 군악(軍樂)이라고 했다. 춤 이름을 나비춤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유는 나비가 날개를 활짝 핀 모양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호접무(電氣胡蝶舞)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 춤이 나비 형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전기광무」, 「전기춤」은 서양식 극장이 들어오면서 춤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조명을 이용하여 새로운 볼거리로 만든 춤이다. 기생조합보다 흥행에 민감했던 사설극장의 기획공연에서 먼저 추어졌다. 각 색의 전기를 쏘인다는 것은 조명이 이미 무대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실험과 이해가 충분했음을 의미한다. 조명을 의상과 결합하여 창작한 근대춤 기간의 새로운 춤이다. 1908년 5월 광무대 상설공연에서 「전기광무」라는 제목으로 추어진 이래 1912년 4월 21일부터 5월 26일까지 펼친 단성사의 강선루 기획공연에서도 추어졌다. 전반부에는 단성사 전속기생이, 후반부에는 신창조합 기생들이 이 춤을 추었다. 춤 이름은 「전기호접무(電氣蝴蝶舞)」, 「전기춤」이라고도 했고, 1인무·3인무·4인무·5인무·6인무로 추었다. 한동안 추어지지 않다가 1917년 3월 다동기생조합의 연주회와 9월의 광무대 기획공연에서 추어졌고, 11월에 광교기생조합 연주회에서도 추어졌다. 1921년 한성권번의 연주회에서 추어졌지만, 이후 공연 기록이 없고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이 춤이 어떤 경로로 안무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시대 미국의 현대무용가 로이 풀러(Loie Fuller, 1862~1928)가 비슷한 아이디어로 춤을 추었다.

참고문헌

  • - 「일제강점기 초반 기생의 창작춤에 관한 연구」(김영희, 『한국음악사학보』 33, 2004)

  • - 『매일신보』(19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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