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혜는 1974년부터 선화예술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양성한 여러 제자들과 순수한 민간차원에서의 직업무용단 결성을 목표로 리을무용단을 창단하였다. 창단 목적은 안무가와 무용수의 전문적인 역할 분담, 재창조자로서 무용수의 영역 확대, 한국무용의 현대화 등이다. 현재 리을무용단은 한국 전통무용을 바탕으로 창작무용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리을무용단은 한국 창작무용을 이끈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로, 1984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대화」로 창단공연을 발표했다. 1985년부터 민족의 수난사를 한 여성의 개인사에 대비시켜 시련과 질곡의 역사를 의연하게 헤쳐 나간 저력과 극복 의지를 땅에 비유하여 형상화한 작품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 등 다양한 작품을 공연하였다. 1987년 발표한 「유리도시」는 프롤로그, 아홉 개의 에피소드, 에필로그 등 3장으로 구성되어 현대적인 시각에서 도시적 삶 속에 갇혀 버린 현대인의 존재성을 상징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한국무용이냐 현대무용이냐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험성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2007~2009년 서울문화재단의 공연단체 중 집중지원단체로 선정되어, 젊은 안무가전 ‘춤추는 모자이크’, 게릴라 공연 ‘톡톡톡’, 명무 레퍼토리 등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기획프로그램으로 한국 창작무용의 대중적 지지도를 높이는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귀신이야기」(2008), 「살」(2011) 등의 작품이 주목받았다.
2014년 3월 29~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칠순을 맞이한 배정혜의 춤인생을 정리하는 기념공연 ‘춤, 70 Years 배정혜’를 4시간 동안 펼쳤다. 이 공연에서 21세기의 감각으로 재구성된 전통무용이라는 ‘신(新)전통’ 개념을 실현하는 20여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1980년대 배정혜는 김매자, 문일지, 김현자와 함께 한국 창작무용을 이끄는 사두마차라고 일컬어졌다. 배정혜가 창단한 리을무용단은 사설무용단이었지만, 한국 무용계에서 창작무용의 활성화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무용단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