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발표된 「제례」는 홍신자가 10년 간이나 병석에 있다가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친언니에 대한 추모의 염을 춤으로 만든 작품이다. 당시 공연에서는 언니가 죽고 난 뒤 십 년 동안 자신의 무의식 속에 내재한 비원, 비탄, 비통이 엄청난 절규로 터져 나왔다고 한다.
뉴욕대학교의 발표회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모태로 발전시켜 뉴욕 소재의 무용전용극장 댄스시어터워크숍(DTW)의 신인안무가 발굴프로그램에서 50대 8의 경쟁률을 뚫고 무대 위에 올려졌다. 여성과 인간을 위한 한풀이 의식의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은 당시 뉴욕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포스트모던 댄스에 동참하는 작품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으로 홍신자는 뉴욕 무용계, 특히 다운타운의 언더그라운드 무용계에서 대대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와 『댄스매거진(Dance Magazine)』 등 유수한 언론에서도 그녀를 조명하였고, 뉴욕에서만 20여 차례 이상 공연되었다.
홍신자의 성공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그녀의 첫 국내공연은 같은 해 9월 명동의 구(舊) 국립극장에서 발표되었다. 당시 국내 최초의 전위무용으로 평가되었고, 또한 현대무용 분야에서는 창작 전위무용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1970년대 당시 현대무용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반주를 맡았다.
1973년 뉴욕 초연 당시 『뉴욕타임즈』의 평론가 제니퍼 더닝(Jennifer Dunning)은 “아무도 홍신자의 앞날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고 언급하였고, 국내에서도 평론가들의 호평이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