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원고지」, 「아벨만의 재판」, 「거룩한 직업」 등의 작품을 낸 작가. 극작가, 교수.
생애 및 활동사항
1959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동국대학교 교수로 복직했고 연극영화과 창설에 관여했다. 1962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로 이직했고, 1969년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과로 옮겨 이곳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했다.
귀국 직후인 1960년 『사상계』에 단막극 「원고지」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왕성한 극작 활동을 펼쳤다. 표현주의극, 부조리극 양식을 활용한 이 극은 당시 리얼리즘극 위주의 한국 연극계에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이후 우화극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0), 재판극 「데모스테스의 재판」(1964) 등의 새로운 양식을 실험했다.
그의 희극세계는 크게 4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권력 혹은 정치 풍자로 대표작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제18공화국」(1965), 「30일간의 야유회」(1974), 「아벨만의 재판」(1975) 등이다. 두 번째는 속물적 현대인 풍자로 「거룩한 직업」(1961), 「국물 있사옵니다」(1966), 「향교의 손님」(1988) 등이 대표작이다. 세 번째는 인생과 연극의 동일성을 그리는 경향으로 「유랑극단」(1971)이 대표작이다. 네 번째는 노년연극으로 「내일, 그리고 또 내일」(1985), 「막차 탄 동기동창」(1991),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1998)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평생 희곡 56편을 발표했고 작품의 대부분이 공연되었는데, 이는 그의 희곡이 뛰어난 연극성과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현대적 연극기법과 현대적 감수성을 담은 새로운 희극을 발표함으로써 한국현대연극의 장을 연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반사실주의 수법, 알레고리, 서사극, 부조리극, 표현주의극 등 현대극 양식들을 실험함으로써 한국연극의 현대성 확립에 기여했다. 2003년 11월 28일 작고했다.
상훈
참고문헌
- 『한국 동시대 극작가들』(김성희, 박문사, 2014)
- 『이근삼희곡전집』1~6(이근삼, 연극과인간, 2008)
- 『한국 인물연극사』2(유민영, 태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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