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민

  • 예술·체육
  • 인물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서기장을 역임한 무용가. 무용평론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정현주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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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서기장을 역임한 무용가. 무용평론가.

활동사항

문철민의 행적은 1940년을 전후해서 신문에 간간히 춤평을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그는 함귀봉과 함께 독일식 현대무용의 중요성을 인지해 체계적인 교육적 전파를 시도하고 마리 뷔그만(Mary Wigman) 기법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주로 리드믹을 위주로 하는 독일형 노이에 탄츠(Neue Tanz)인 현대무용과 교육무용을 교수하였다.

『경향신문』 1946년 10월 8일자에 무용에 체조나 음악과 동등한 시간을 배정할 것, 무용학교를 설립하고 졸업생에게 교원 면허증을 교부할 것, 무용극장을 줄 것, 해외에서 무용이론가 초빙, 조선무용가의 해외진출을 알선할 것, 무용협회에 권력을 부여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문철민은 함귀봉, 박외선과 함께 모던댄스를 예술적, 교육적 차원에서 수용하였고, 1946년 함귀봉의 조선교육무용연구소의 수업에서 이론적 부분에 도움을 주었다. 1946년 무용가들의 정식 협의체인 ‘조선무용예술협회’가 출범하는데 여기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당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무용평론가로서 한국의 무용비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제자로 김문숙, 김기전, 평론가 조동화, 김경옥, 정병호, 극작가 차범석과 최창봉 등이 현대무용의 기반을 다지게 되는데, 이들 무용평론 1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초등교육과정에 무용 수업의 의무화를 요구하는 등 무용을 사회의 주도적인 예술장르로 세우고자 주장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무용교사의 자격증제가 실시되고 초등교사의 강습과 교육무용과 유아무용 등이 개척되기 시작하는데 기여하였다. 6·25전쟁 이후 그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 『한국현대 예술사대계』1(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시공사, 1999)

  • - 「한국 근대 춤 자료사」(『춤』 12, 1993)

  • - 「현대무용은 오늘날 몸문화, 몸사상의 이상적 구현체」(『서강대학원신문』 125호, 19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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