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에서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이나 은선(銀線)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상감기법 기술을 보유한 입사 장인이다. 1919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전통입사기법을 배우고, 이후 일본의 신기술과 기계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여 금속공예 산업화에 이바지하였다.
1900년 충청남도 직산에서 출생한 이학응(李鶴應)은 1916년 상경하여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 들어가 입사(入絲)와 서화, 조각 장인으로 유명했던 이행원에게 사사 받았다. 이후 일본 교토[京都]로 건너가 일본의 문물과 기계조작법 등을 익혔다. 1926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교토전승공예공모전에 조선식 전통입사기법으로 제작한 철제은입사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1930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애오개에서 전문 금속 공방인 ‘응성당(應星堂)’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금속 공출이 심해지자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중국 상해로 이주하였다가 해방 후 귀국하였다. 1946년에는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천상당(天賞堂)’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 당시에는 일본에서 익혔던 기계 방식을 접목하여 식기류의 대량 생산에 힘썼다. 일상 기물의 수요는 급증했고, 1947년에는 명동으로 공방을 확장이전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로 충청남도 예산으로 피난하였다가 전쟁 후 서울로 돌아와 영등포시장에 ‘황금당’을 열었으며, 1958년에는 종로구 견지동에 복성사(復成社)를 운영하였다.
1983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입사장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