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신파극단인 혁신단의 창단 멤버로 활동한 배우. 연극배우, 극작가, 연출가, 영화감독.
생애 및 활동사항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잠시 연출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에는 신극 창작 및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의 폭을 넓혔다. 1926년 10월 신파극 배우들과 복혜숙을 비롯한 일부 토월회 배우들이 결합한 극단 조선극우회의 창립공연 4편 중 「기갈」 대본을 창작했으며, 1927년에는 조선 최초의 촬영감독인 이필우와 함께 조선권번의 기생들을 소재로 한 영화 「낙양의 길」을 감독하기도 했다.
1929년 말 취성좌의 핵심 단원들이었던 지두한, 이경설, 이애리수, 전옥, 강홍식, 이경환 등과 함께 조선연극사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이 극단에서 대표 및 대본작가, 연출가로 활동했다. 비극 「눈먼 동생」(슈니츨러 원작, 1929), 「너는 밋치였지만」(1930), 「불여귀」(1930), 희비극 「새벽종소래」(1930), 가극 「경성행진곡」(1930) 등을 각색, 연출했다.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중 갑작스럽게 1930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대표적 신파극단인 혁신단, 취성좌, 조선연극사에서 다양한 장르의 각색과 창작 극본을 쓰고 연출하여 신파극이 좀더 사실주의에 가까운 대중극으로 변모하는 데 기여한 연극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사전』(강옥희·이순진·이승희·이영미, 도서출판 소도, 2006)
- 『한국근대연극사』(유민영, 단국대 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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