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9월 28일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서 아버지 김천순(金天淳)과 어머니 김사단(金沙丹)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소학교를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과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일보사 목포지국장, 대한독립촉성 전국청년연맹 목포지부 부위원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목포지부 조직부장, 대한노총 목포지부 총무부장, 목포일보사 편집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헌법기초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북하였다.
북한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간부,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겸 상무위원 등을 지냈으며, 조국통일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8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평양직할시 룡성구역 ‘재북인사들의 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