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장선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36년 고향인 서천군으로 돌아와 신라병원을 개업해 의사로 활동하며 신사참배 반대와 창씨개명 거부 운동을 전개,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한국독립당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후 국민회에 입회하여 서천 지부장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에 서천군 지역 국민회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7월에 납북되었고, 이후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상무위원 등을 지냈다. 1956년 6월 노동자로 유배되었고, 198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