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전라남도 광양 출생으로, 광양공립보통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재직하며, 조선인 노동자 대우 개선 투쟁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해방 후 광양 진상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광양군에서 당선되어 헌법, 정부조직법 기초위원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6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출옥해 납북되었다.
1956년부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과 간부로 활동했으며, 1980년 9월 12일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