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대구 달성 출생으로, 대구협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유학해 북경대학(北京大學)을 졸업했다.
1945년 해방 후 유도회 경상북도 위원장을 지내며 한국민주당 경상북도 감찰위원장을 맡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경상북도 달성에서 당선되었다.
의원 재직 중인 1949년 성낙서, 곽상훈 등의 의원들과 함께 신민회 발족에 참여했으며, 「농지개혁」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유림들의 향교재산 토지를 매수치 말아달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납북되어 북한에서 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