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미군정청 농림부 기사로 근무했으며, 조선민족청년단에 참여해 활동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수원군 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해 8월 5일 제헌국회 제 40차 본회의에서 친일파 처단문제를 위해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검찰관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 1949년 7월 사임했다.
1950년 제2대 민의원선거에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화성군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전쟁으로 납북되었다.
이후 1957년부터 북한에서 평화통일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