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경상남도 양산 출생으로, 상북보통학교와 서울보성고보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정치학부 정경과를 다니던 중 독립운동 학생모임에 가담했다. 이때 아버지 정순모(鄭舜謀)와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나,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아 1934년 체포되었다.
1939년 상해로 망명했으며 일시 귀국했다가 서울 영등포역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여 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고향인 양산군 지역에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써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중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윤치영의 도움으로 유학시절 독립운동자금 지원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구제되었다.
196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1984년 7월 25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