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출생으로 부산 제2상업학교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운수부(정부수립 후 교통부)에 들어가 진주역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통부에서 철도 국장을 거쳐 교통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차관으로 재임하면서 1949년 외국원조물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허정의 뒤를 이어 교통부장 관직을 수행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강다리 폭파와 재건에 관여했다.
서울 수복 후 1950년 11월 17일부터 4일간 북한 지역인 평양 진남포, 해주 등지의 철도시설을 시찰하고, “북한 탈환지역의 교통행정은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지만 미군당국과 교섭한 결과 교통관련 종업원 임명권, 운영권 등을 모두 교통부 장관 명의로 실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며,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사리원, 평양, 진남포 등의 철도 복구를 위해 노력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으며, 북한 지역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교통상황 복구와 계획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1953년 창경호 침몰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은퇴 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으나, 1956년 6월 21일 부산시 초량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