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관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교통부차관,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한국전쟁|창경호 침몰사건
  • 사망 연도1956년 6월 2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2년(고종 29)
  • 출생지경남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손동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교통부차관,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내용

1892년 출생으로 부산 제2상업학교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운수부(정부수립 후 교통부)에 들어가 진주역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통부에서 철도 국장을 거쳐 교통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차관으로 재임하면서 1949년 외국원조물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허정의 뒤를 이어 교통부장 관직을 수행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강다리 폭파와 재건에 관여했다.

서울 수복 후 1950년 11월 17일부터 4일간 북한 지역인 평양 진남포, 해주 등지의 철도시설을 시찰하고, “북한 탈환지역의 교통행정은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지만 미군당국과 교섭한 결과 교통관련 종업원 임명권, 운영권 등을 모두 교통부 장관 명의로 실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며,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사리원, 평양, 진남포 등의 철도 복구를 위해 노력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으며, 북한 지역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교통상황 복구와 계획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1953년 창경호 침몰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은퇴 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으나, 1956년 6월 21일 부산시 초량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참고문헌

  • - 『일제강점기 인명록』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 (민족문제연구소, 2005)

  • - 『동아일보』(1956.6.27)

  • - 『동아일보』(1960.1.28)

  • - 『경향신문』(1956.6.2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